헬렌 켈러

anything goes 2007. 10. 3. 00:47
얹혀서 쓰고 있는 내 zog에 들러서 오래간만에 읽어본 후 다시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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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성장한 뒤에는 어떻게 됐지?"하고 물었을 때 이에 대해 안다고 대답한 사람은 단 한명도없었다. 미국의 중·고등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교과서는 헬레켈러가 성인이 된 뒤에 펼친 활동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기록하고 있지 않거나 기껏해야 사회사업가 정도로만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1880년에 태어났고 1968년에 죽었으니 대략 68년 동안의 그녀 활동에 대해서는 교과서가 "벙어리"가 된 셈이다.

그러면 실제로 헬렌켈러는 성인이 된 뒤 어떤 활동을 펼쳤을까. 우선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기 이전에 이미 급진적 사회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1909년 매사추세츠 사회당에 가입했는데 이는 그녀가 대학에서 배운 지식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그녀는 이 새로운 공산국가에 대해 "동쪽에서 새로운 별 하나가 떠올랐다. 고통과 고뇌 속에 구질서는 새질서에 자리를 내줬다. 동무들이여, 함께 가자. 러시아의 횃불을 향해, 다가오는 새벽을 향해!"라며 칭송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녀는 자신의 서재 책상위에 늘 붉은 기를 꽂아 놓았으며, 사회당내 좌파로서 기존 미국 노동운동의 대표적 조직인 미국노동총동맹(AFL)의 보수화에 반기를 들고 탄생한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에 가입해 급진적 노조운동을 벌였다.

헬렌켈러가 사회주의자가 된 것은 물론 그 자신의 장애 체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개인의 장애를 넘어 장애를 가진 타인들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갔다. 그녀는 처음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알파벳을 간략화하는 일을 했는데, 이때 시각장애 그 자체만을 다루는 것은 증상만 치료하고 원인을 치료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즉 그녀는 시각장애인이 사회 각 계층에 무작위로 퍼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층 계급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뜬" 것이다.

가난한 남자들은 산재사고나 의료 혜택 부족으로, 창녀가 된 가난한 여자들은 매독으로 시각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그녀는 사회의 계급구조가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 심지어 "세상을 볼 수 있는지 없는지" 까지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스웨트숍(Sweatshop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제3세계 노동자를 착취하는 공장), 공장, 빈민굴에 다 가보았다. 나는 비록 볼 수 없지만 냄새는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헬렌 켈러가 이러한 활동에 몰두하는 만큼 그녀는 냉전논리가 판치는 미국사회에서 악명이 높아져 갔다. 언론은 이제 그녀의 장애를 약점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누군가가 "불온한" 이념을 주입했고 그녀는 자신의 장애때문에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년에 미국 사회는 매카시 선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성운동을 위해, 언론의 자유를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했으며 사회주의 이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나 지금이나 미국 사회는 사회주의에 대해 거의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거부감을 보여왔다. 그렇다고 해서 헬렌 켈러의 활동이 기록에서 삭제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교과서 집필자들이 비록 그녀의 이념과 활동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왕에 그녀에 관해 기록하는 마당이라면 그녀의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일생 전체에 관해 기록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국 역사교과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 월간 "말" : 김성환의 History Today "미국 학생들이 배우는 거짓역사" 중에서

정열적인 사회주의자

헬렌은 자신을 성녀나 기적을 이룬 소녀로 영원히 남겨 놓으려는 세상에 반기를 들었다. 자신을 장애인 이상으로 보지 않는 정상인들의 의식을 뛰어 넘어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장애인 복지운동, 여성 참정권 운동, 인종차별 철폐운동 등은 다른 세상에서 고립되어 있던 헬렌이 적극적으로 세상과 맞서게 한 수단이 되었다. 사회주의자 헬렌 켈러도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했다.

그녀는 장애인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의 편견 속에서 차별 받는 자신의 동료들을 자본주의하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와 동일시했다. 카네기를 경멸하고 레닌을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하는 헬렌에게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을 지지하고 1차 대전에 참전하려는 미국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어린 시절부터 미국의 역대 대통령을 모두 만난 유명인사였지만 사회주의에 눈을 뜬 이후로평생 동안 그녀는 민중과 함께 하고 싶어했다.

그녀는 유명인사들의 얼굴을 모두 만져봤지만 정작 만져보고 싶은 것은 노동자의 주름진 얼굴이었다. 승용차를 타는 것보다 지하철을 타면서 즐거워했다. 그녀는 이 모든 활동이 궁극적으로 장애인 운동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믿었다.

아이러니하게도 2차 대전 후에 몰아친 매카시즘의 열풍 속에서 유명한 사회주의자인 그녀가 무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장애인이기 때문이었다.

- "자본주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쓸모보다 목숨이 길어요." (인터뷰 중에서)

-- '헬렌켈러'(도로시 허먼지음) 의 출판사 리뷰중에서

(source : lupin님의 z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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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iscote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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