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문서 작성을 하던 중, 불현듯 지하실 생각이 떠올라 재빨리 티스토리에서 검색해 봤더니, 약 3개 정도의 관련 글이 발견되었다. 그 중 하나는 조선일보 100대 사이트, 또 하나는 음악 관련 블로그의 캐스커 소개글 (resonance를 즐겨 들으셨다는데 누구실까?), 나머지 하나는 w님의 블로그였다.  

지하실과 함께 한 시간이 벌써 몇 년 째인지...

1. 지하실 방문 계기

우리집에는 아빠가 정기구독하시는 월간조선이 있었다 (정말 어이없게도, 80년대 민주화운동에 나름대로 관심이 있으셔서 옅게 관련이 되었던 분이 십 여 년 후에는 월간조선을 잠깐 정기구독했다는 사실.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_-).

월간조선 2001년 12월호의 책장을 슬슬 넘기다가, 거의 맨 끄트머리에 5대 사이트가 선정한 한국인의 100대 사이트(1인미디어 컨셉)라는 기사를 발견하였다. 몇 가지 흥미있는 사이트를 메모해 놓았는데, 그 당시 이래저래 바빠서 바로 방문하지는 못했었고, 며칠이 지나서야 비로소 방문할 수 있었다.

지하실은 각 쟝르별로 채널이 할당되어 있어서, 청취자들은 취향것 사전에 녹음된 방송 파일을 감상하는 시스템이었다. Easy listening, electronics, modern rock, rock, 영화 음악, jazz, music video의 7가지 채널이 있었고, 각 채널별로 CJ가 한 명씩 있었다. 모 그룹의 열렬한 팬인 나는 당연히 2번 채널인 resonance를 먼저 클릭하였다 (이 문장에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 몇몇이 떠오른다 흣). 스트리밍되는 음악과 멘트(약간 혀가 짧은 저음이었지만, 나름 매력있었다. 물론 가장 좋은 건 멘트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거. 말많은 방송은 좀...)를 들으며 선곡 리스트를 보고 있으니, 내가 서식해야 할 채널은 바로 여기라는 강력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 며칠간은 눈팅만 열심히 하다가, 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모 그룹 관련 내용으로 첫번째 글을 업로드하였다. 그렇게 글을 올리고 리플을 달면서, 점점 resonance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채널 게시판 외에도 자유 게시판과 나머지 채널들까지 섭렵(?)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2. 지하실=검정

지금도 지하실하면 검정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그 당시 내가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잠시동안 회색톤의 메인화면이었던 상태여서 그나마 덜 칙칙했었지만, 그 때를 제외하고는 지하실의 모든 페이지는 검정 바탕 & 회색 폰트였다. 아... 지금 이 문장을 쓰는 순간에도 까만 화면에 대한 그리움이 솟는다. 처음에는 눈이 좀 피곤했으나, 어느새 지하실=검정에 익숙해져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그 검정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게 된다.

3. 지하실=중독

난 resonance에서 죽치고 살았었다. 어느 정도였냐하면, resonance 새 업데이트분과 내가 지하실을 알기전부터 방송되었던 기존 방송분을 같이 들으면서, Hinet recorder를 이용하여 녹음한 후 보관하기까지 했다. 안타깝게도 그 파일들은 하드가 날아가면서 같이 날아갔지만... (이래서 모든 자료는 항상 backup해야한다 ㅠ.ㅠ). 나중에 정모에 나가보니 나만 녹음한 게 아니었더라;;;

내가 아무리 electronica를 사랑해 마지 않았어도, 다른 쟝르의 음악을 아예 안 듣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점점 다른 채널로도 관심의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그 당시 약속이 없었던 일요일의 경우에는, 지하실에 접속하여 방송을 틀어 놓고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으면서 오후를 보내곤 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빛을 받으면서 잠이 들기도 하고... 청취 채널의 순서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2번 -> 6번 -> 3번 -> 4번 -> 1번 혹은 5번 (순서에 너무 상처받지 마시길). 역시 미드나 일드나 애니나 지하실이나 몰아듣기가 최고야.

그렇다면 하루에 지하실을 몇 번씩 들락거렸는가. 최소한 퇴근 후 집에서 매일 한 번 이상은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주요 이슈가 있는 날 (정모, 번개, 식탐, 공연 단체 관람 등)에는 회사에서도 접속하여 항상 현황을 체크했었다. 물론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지하실의 게시판은 zero board여서 리플 단 시간까지 보여졌었는데, 거의 실시간 리플놀이가 이루어 진 적도 꽤 많았었다.

그렇게 온오프를 넘다들다 보니, 지금까지도 내 동생들은 지하실=악의 구렁텅이로 인식하고 있다. 일단 온통 까만 메인화면부터 마음에 안 든다, 이름 부터가 곰팡내나고 칙칙하다, 역시 인간들도 지하 세계에 어울리는 색깔들이다 등의 일치된 의견을 보였다. "아직도 지하실 사람들 만나고 다녀?" 요즘에도 듣는 소리이다. 근데, 중요한 사실은 내 동생들만 그런 게 아니라는 점이다. 몇몇 지하실 사람들의 의견들을 취합해 본 결과, 지하실 사람들의 형제자매들은 대부분 지하실에 매니악, 오타쿠, 칙칙하다 등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지하실의 주요한 중독 요인으로는 음악과 사람이 되겠다...

(나머지는 2편에 계속)

Posted by discote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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